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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暮途遠(일모도원)' 해는 저물고 갈 길은 멀다..오자서가 친구 신포서에게 한 말
기사입력  2021/09/04 [17:13]   오정탁 기자

기원전 506년 오나라 왕 합려(闔閭)는 '손자병법'의 저자 손무(孫武)를 대장, 오자서(伍子胥)를 부장으로 삼아 초나라를 공격해 수도 영(郢)을 함락시켰다.

오자서는 초나라에서 원수인 평왕과 비무기를 찾았으나 둘은 이미 세상을 떠났고 평왕의 아들 소왕(昭王)은 도망쳐 찾을 수 없었다.

이에 분개한 오자서는 평왕의 무덤을 파헤쳐 그의 시신에 300번의 채찍질을 가해 아버지와 형의 복수를 완성했다.

'굴묘편시(掘墓鞭屍 무덤을 파헤쳐 주검에 채찍질을 하다)'는 여기서 유래된 고사성어다. 

오자서는 그의 혹독한 행동을 나무라는 친구 신포서(申包胥)에게 "해는 저물고 갈 길은 멀어 도리에 어긋난 일을 할 수밖에 없었다"고 답했다.

여기서 '일모도원(日暮途遠 날은 저물고 갈 길은 멀다)' 이란 고사성어가 유래됐다.

앞서 오자서는 초나라 평왕이 모함에 속아 충신인 아버지와 형을 죽이자 초나라를 탈출해 여러나라를 돌아다니며 복수를 다짐하던 중 오나라 합려의 눈에 들어 중용됐다.

 

그후 오왕 합려는 월(越)나라를 치다가 죽었다.

왕위를 계승한 합려의 아들 부차(夫差)는 원수를 갚기 위해 월나라를 쳐 회계산에서 월왕 구천(句踐)을 잡았지만 월왕 구천이 부차에게 충성을 맹세하자 그를 없애자는 오자서의 말을 거부하고 살려줬다.

부차는 베푼 선심만 믿고 오월동주(吳越同舟)의 평화를 기대했으나 구천은 회계산의 굴욕을 잊지 않고 와신상담(臥薪嘗膽) 복수를 노렸다.

오왕 부차는 월왕 구천이 이를 갈고 복수를 노리는 것도 모른채 패자가 되는 허영심에 사로잡혀 있었다.

월나라를 쳐 없애자고 건의하고 초나라 평왕의 시신에 만행을 자행한 오자서는 부차의 눈 밖에 났다. 이런 틈에 간신의 모함에 부차는 오자서에게 칼을 내려 자인을 명령했다.

오자서는 이때 "내가 죽거든 내 눈알을 뽑아 문 위에 걸어둬라. 월군(越軍)이 쳐들어와 오나라가 망하는 것을 보고싶다"고 유언했다.

이말을 전해들은 부차는 오자서의 시신을 말가죽으로 만든 자루에 넣어 강물에 던져 버렸다.

그후 오자서가 예언한대로 부차는 월왕 구천의 손에 죽임을 당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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